내가 사랑하는 그는 곧잘 넘어진다. 그냥 걷다가도,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서 잘 넘어진다. 그러다 보니 그가 뭔가를 들어야 할 때면 내가 대신 들고. 걱정이 될 때는 걷지도 못하게 내가 안아서 옮겨주기도 했다. 아니, 솔직히말하자면 후자의 경우가 평소의 모습이라 말할 수 있다. 그는 자기 발로 침대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일어나면 아침밥을 준비하고, 그를 안아서 화장실로 간 뒤 씻기고, 다시 안아서 식탁에 앉히고, 다 먹으면 TV가 잘 보이는 위치의 쇼파에 앉힌 뒤 그가 좋아하는 채널을 켜주고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가 끝나면 그가 돌아다닐 때마다 그 뒤를 졸졸졸 따라다닌다. 극성맞아 보이겠지만 그가 싫다고 하지 않는 한, 나는 끝까지 그의 뒤를 따라다닐 것이다.

강릉으로 이사한 뒤의 그는 외출이 잦아졌다. 바다를 보러 나가고, 일출을 보러 나가고, 일몰을 보러 나가고, 달을 보러 나간다. 그럴때면 나는 노트북과 서류를 들고 한 눈으로는 일거리를 보고 한 눈으로는 그를 보건 했다. 그가 나를 돌아보며 정말 예쁘지 않냐고 물어올 때마다 하지만 내 눈에 들어오는 예쁜 것은 그뿐이었다. 언제나 내게 가장 예쁜 것은 바다도, 해도, 달도 아닌 그였고, 나보다 바다가, 해가, 달이 예쁜 그가 조금도 밉지 않고 오히려 그의 칭찬을 받은 그들을 시샘했다. 어느날은 그가 넓은 눈밭을 보고 싶어했다. 마침 어제부터 눈이 꽤나 쌓였고 근처에 휴지기의 밭이 있는 곳을 봐두었기에 걸어서 그곳까지 가기로 했다. 다행히 밭에 도착할 때까지는 그가 한번도 넘어지지 않았다. 두렁에 서있는 그를 찍고 있을 때 강한 바람이 불었다. 마른 눈이 바람에 휘날려 다시한번 내렸다. 그가 휘청하는 모습이 보였다. 사진기를 거의 버리듯이 던지고 그에게 뛰어갔다. 그가 중심을 잃기 직전에 그의 팔을 잡고 강하게 당겼다. 그의 온기가 이렇게 다행스러웠던가...
그는 조금 넘어진다고, 무릎 좀 까진다고,  흙범벅이 되었다고 우는 그런 연약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밖에서 안을 수 있는 기회는 적었기에, 그의 따뜻함을 천천히 음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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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네이버 블로그에 써둔 걸 단어만 고쳐서 가져와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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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r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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